*어떤 평행 세계일지도 모를, 날조가 많은 이야기입니다. *사실과 거리가 멀기에 재미로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서늘하면서도 개운한 바람이 거리를 훑으며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다부진 근육의 빨간 용인은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행사 가격으로 저렴하게 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쭉 들이켰다.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왔는데 괜찮겠지?’ 가볍고도 여유 있는 걸음으로 빨간 용은 붉은 기가 도는 벽돌로 건축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휘갈김에 가까운 필기체의 ‘레드 드래곤 카페’ 간판은 옛날 옛적부터 있었던 가게인 느낌을 주었지만, 후카는 이 카페가 개업한 지 1년도 안 된 가게임을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지나다니던 거리일뿐더러, 개업 후 주변 친구들이 가게와 자신을 엮으며 놀려대기 시작한 탓에 모를 수가 없었다.
후카는 외관으로는 육중해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는 까닭에 쉬이 밀리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 램프 모형이나 유리 샹들리에 등 요소 하나하나에 후카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안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곧장 스태프 룸으로 들어온 빨간 용인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캐비닛을 열었다. 나름 집사 카페를 표방하는 가게인지라 모든 직원의 유니폼은 정장 혹은 검정 치마와 하얀 앞치마였다. 후카는 당연히 전자를 택하는 쪽이었으나, 캐비닛 속 정장 옆에 어제 첫 퇴근 할 때는 없던 치마 세트가 걸려 있었다. 후카는 바로 쾅 하는 소리가 사방에 울리도록 문을 닫았다.
요란한 소리에 바로 옆 사장실 문이 열리고 회색곰 수인이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쭈니 사장님, 이게 뭐죠?” 후카는 메이드 카페지만 K-POP을 연신 틀어대는 사장 쭈니에게 자신의 캐비닛을 열어 보여주었다. ”저 채용 면접 때 정장만 입겠다고 했는데요?” ”제로가 말 안 해줬어?” ”원한다면 메이드복으로 바꿔도 된다고 이야기하긴 했습니다.”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안 들었나 보네.” 회색곰은 후카에게 잠시 사장실로 따라 들어와 보라는 손짓하며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사장실 안 한편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과 이동식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반대쪽에 접대용 하얀 소파가 있었다. 사장님 자리에 쭈니가 앉고, 후카는 면접을 봤을 때와 같이 손님석에 자리 잡았다. ”우리 카페는 팁이 없는 대신 인센티브를 준다는 건 안내를 해줬는데.” 쭈니는 어느 순간부터 들고 있었던 상자를 후카에게 내밀었다. ‘칭찬합니다’라고 적힌 상자 안에는 쪽지가 깔려 있었다. 하나 읽어보라는 손짓에 후카는 하나 꺼내어 읽어보았다. ’라이거의 풍만한 가슴에 눈이 치유받고 갑니다.’ 쪽지 안에는 칭찬인지 희롱인지 모를 말이 적혀 있었다. 사장은 말을 이었다. ”우리 가게는 직원 칭찬 메시지를 손님에게 받아서 월말에 그 수에 맞춰 보너스를 주고 있어. 아 맞다 그리고.” 회색곰은 후카에게서 상자를 끌고 가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쪽지에는 지폐가 클립으로 끼워져 있었다. ”원칙은 팁은 금지인데 이렇게 팁을 주는 경우도 있지.” 그리고 쭈니는 일어나 책상 위 쪽지와 돈을 가져왔다.
“그래서 입을 거예요?” 분홍 소시지와 비슷한 색상의 용인이 짧뚱한 팔을 어찌저찌 움직여 메이드복으로 환복하고 있었다. 일찍 출근한 후카였지만, 사장실에서 받아 든 쪽지 탓에 쉽사리 환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 출근 만에 생긴 후카의 팬이 쭈니 사장님에게 직접 쪽지와 거액을 남겼고, 쪽지에는 메이드복을 입으면 그 거액의 팁을 드리겠다고 남겼기 때문이었다. 돈이 궁했기에 이런 카페라도 온 후카이기에, 당일 지급 거액의 팁은 흔들리기에 충분했다. ”한 번만 입으면 되는 데 뭐 어때요?” 메이드 선배 김제로라는 용인은 심란한 후카의 마음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긴 검은 치마를 살랑거리며 홀로 향했다. 후카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잠깐 꺼내본 메이드복은 나름 큰 치수였지만, 그걸 입었을 때 드러나는 자신의 가슴선과 꼬리로 인해 생기는 치마의 흔들림. 아찔한 가슴골과 허리선을 자신의 얼굴에 대입하니 상상을 그만두고 싶어졌으나, 북극곰 실험과 같이 생각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메이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후카는 메이드복을 들고 거울 앞으로 향했다. 자기 몸 위에 검은 원피스를 두자, 갑갑한 마음은 더 타들어 가듯 조여들었다. ”후카, 소식은 들었는데, 그거 입을 거야?” 슬슬 출근 시간이기에 출근한 라이거 루카가 손가락으로 후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김제로가 사방팔방 소문을 냈는지 루카는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입어보신 적 있어요?” ”응, 나도 취직하자마자 입어 달라고 해서 입은 적 있는데, 가슴 부분이 터지는 바람에 지금은 정장만 입고 있지.” 후카는 자신보다 이틀 정도 먼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라이거 역시 메이드복이라는 수난을 겪었다는 것에 한 번, 자신과 비슷한 흉곽을 가진 퍼리가 메이드복을 가슴으로 터트렸다는 사실에 두 번 좌절했다. ”슬슬 우리도 나가봐야 할 텐데 도와드릴까요?”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고, 큰돈도 거절할 수도 없었던 후카는 떨구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개업 시간에 맞춰 두 가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깔끔하면서도 얼굴 아래로 굴곡이 이리저리 많은 정장을 입은 라이거 한 마리 뒤로 후카가 종종걸음으로 직원실에서 나왔다. 붉은 용인은 수줍고 부끄러운 마음에 달아오른 뺨을 푹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니 메이드복 윗부분이 편히 죽여달라는 듯 양옆으로 늘어나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걸으면 횅한 아랫도리에 일렁이는 치맛바람이 거슬렸다. 루카가 손님맞이를 위해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한편 후카는 평소 걸음걸이의 3할 정도 밖에 못 걸었다. ”도련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접객을 시작한 후카였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마치 이 상황을 손님들도 즐기는 듯이 후카를 보고 즐겁고 쿡쿡거리며 웃었고, 메이드복 후카가 신입이라는 사실을 구태여 밝히지 않아도 후카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여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치마와 가슴에 온 신경이 쏠린 후카에게는 닿질 않았다. 다행히도 부끄러움에 말린 후카의 꼬리가 손님에게 닿을 뻔하여 손님이 직접 꼬리를 치우려다가, 후카가 하이톤의 꺅 소리가 내버린 것 외에는 아직 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손님이 카페에 들어차기 시작했을 때 일어났다.
사방으로 격렬한 K-POP이 울리는 가게 안, 더딘 후카의 발걸음에 서빙이 덩달아 느려졌다. 이런 바쁜 상황에 주방의 누군가가 후카를 조용히 닦달한 것이 후카 메이드복 가슴 찢기 사건의 발단이었다. ”후카, 이해는 한다만, 조금 더 빨리 부탁할게.” ”네…!” 다급한 마음과 익숙지 않은 복장은 바로 사고로 이어졌다. 접시가 후카의 손에서 미끄러졌고, 매장 안은 파열음으로 한 차례 흔들렸다. 가게의 모든 시선이 후카에게 쏟아졌고, 당황한 후카는 잠시 멀뚱히 서 있다가 파편이라도 모아두고자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까와는 다른 파열음. 가슴께의 옷이 후카의 거대한 가슴을 버티지 못하고 좌우로 찢어졌다. 붉고 탄탄한 가슴이 카페 안 모든 이의 집중을 받았고, 시기적절하게 배경 음악은 하이라이트로 흘러 마치 K-POP 무대를 연상케 하였다. 접시 파편이라도 수습해 보려던 손을 다급히 가슴으로 향한 후카였지만, 노력에도 후카의 양 가슴을 가릴 수 없었다. 다급히 김제로와 루카가 대걸레와 담요를 가져와 상황을 수습했다. ”장가… 못 가…” 붉은 용인은 직원실에서 수줍은 여자아이처럼 담요를 덮은 채 몸을 최대한 수그리고 앉았다. 당연하게도 몸을 웅크린다고 한들 거대한 가슴이 작아질 일은 없기에 거대하고 울퉁불퉁한 붉은 알이 벤치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밖에서 수습이 되었는지, 회색곰 사장이 직원실로 슬며시 들어와 후카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이만 오늘은 퇴근해도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메이드복으로 약속된 팁을 찔러넣듯이 후카에게 건네주었다. 이른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