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평행 세계일지도 모를, 날조가 많은 이야기입니다. *사실과 거리가 멀기에 재미로만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행운과 불운의 합이 0인 날. 하루 동안 운이 좋으면서도 없는 루카는 젖은 상의를 한쪽 팔에, 찢긴 집사 정장을 다른 쪽 손에 들고선 망연히 사물함 앞에 서 있었다. 죽을 만큼 위험한 상황도 부끄러워서 죽고 싶은 상황도 아니지만, 막막한 지금에 루카는 주마등 스치듯이 곰곰이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라이거는 기지개를 시원하고 개운하게 쭈욱 피며 일어났다. 창 너머로 비단 같이 부드럽고 따스한 볕에 루카의 시선은 자연스레 밖으로 향했다. 양동이를 뒤집듯 쏟아지던 폭우에 출근길을 걱정하던 어제보다 밖은 구름만 조금 있었을 뿐 화창했다.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에 갈색 머리칼의 혼혈 퍼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부터 이어진 사뿐한 발걸음으로 짧은 반바지에 외출용 러닝셔츠로 환복한 근육질의 루카는 가벼운 아침 산책을 위해 집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했던 그때, 루카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기상 알림이 그제야 울렸다. 밖에서 일어나라는 알림이 요란하게 울렸다면 당황했을 테지만, 운이 좋게도 집안에서 여유 있을 때 울려주는 덕에 기분 좋은 하루 시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벼운 아침 산보, 기분 좋은 땀방울이 루카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늘 쉬던 벤치에 다다르고, 익숙한 듯이 늘 앉던 자리에 루카가 앉으려고 할 찰나, 한 종이가 눈에 띄었다. 운이 애매하게 좋은 누군가의 즉석 복권이었다. 애매하게 좋은 5등상, 5000원. 경찰서에 가져간다 한들, 주인을 쉽게 찾아주기도 경찰이 찾아줄지도 모를 애매한 금액. 루카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주말에 봉사활동으로 이 행운을 보답하리라 생각하며 호주머니에 그 복권을 챙겼다. 산뜻한 날씨, 딱 적당한 온습도, 기분 좋은 바람에 경쾌한 경보를 이어가며 라이거는 아침 늦게, 하지만 평소보다는 일찍 집에 돌아왔다. 가벼운 샤워를 하며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루카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는지, 아침 씨리얼에 말아 먹을 우유가 부족하지 않게 남아 있었고, 식사 후 집사메이드 카페 '레드드래곤 카르텔' 출근 준비까지 신경 쓸 만한 큰 변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서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어머나, 죄송해요!" "아,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다치신 곳은 없나요?" "아... 근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로수와 거리의 가게를 구경하며 걷던 루카와 그와 비슷하게 친구와 이야기하며 걷던 수인이 부딪혔다. 서로 앞을 보지 않고 걸었기에 생겨난 불상사에 서로가 서로에게 사과하였으나, 물리적 부딪힘은 다부진 근육의 루카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루카의 좌측 상반신에 한국 아침 드라마처럼 뿌려진 카페 라테였다. 마침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쥐고 걷던 상대방에 루카와의 부딪힘에 놀라 커피를 강하게 쥐어짜듯 잡는 바람에 커피가 위로 솟아올라 생긴 불상사였다. 가득 차 있었던 커피잔은 한 모금도 안 남았고, 루카의 왼쪽 가슴은 대부분의 커피를 빨아들였다. "세탁비...! 세탁비라도 물어드릴게요." "아, 네네." 평소라면 서로 잘못한 상황이기에 거절하겠다만, 바지까지 살짝 젖어버린 탓에 라이거는 성의껏 주는 대로 받았다. 세탁비를 주면서도 연거푸 대역죄인처럼 사과하는 상대방에 루카는 옷이 가슴에 붙지 않게 잡아 털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다행히도 하루를 일찍 그리고 활기차고 기분 좋게 시작한 행운 덕에 집에 돌아가 환복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과도하게 부어진 커피 탓에 엉거주춤 걸으며 루카는 이른 귀갓길에 올랐다. 젖은 옷이 몸에 붙지 않게 살짝 들어서 움직였으나, 간헐적으로 붙는 커피에 절인 옷은 굉장히 거슬렸다. 특히 가슴께에 달라붙을 때마다 미감이 좁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계속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지.' 집에 돌아온 라이거는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샤워실에 들어가 몸에 묻은 커피 향을 지워냈다. 다른 옷을 꺼내입고 시계를 보니 평상시 출근보다 30분 늦었다. 루카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기 전 했던 다독임을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뇌며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하지만 침착하려던 마음은 애매한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조금 서두르면 정시 출근할 수 있는 애매한 늦음. 루카는 건널목 끝에 서서 빨간 보행 신호가 푸른색으로 바뀌길 기다렸다. 마음만은 다급한 라이거에게 잠시 열을 식히라는 듯이 파도 같은 물벼락이 뿌려졌다. 지각할지도 모른다는 루카만큼이나 다급한 소형 트럭 기사가 빠르게 커브를 돌았고, 어제 내린 비에 생긴 물웅덩이가 때마침 거기에 있었을 뿐이었다. 푹 젖은 루카는 멀뚱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루카를 위해 횡단보도는 초록불을 띄워 주었다.

'루카, 그런데 알잖아, 오늘 쉬는 직원들 많은 거. 일단 와봐. 보고서 말을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푹 젖은 이의 몰골로 루카는 근무지에 도착했다. 전화로 사정을 말하고 오전 반차를 써 늦게 출근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오늘 마침 월차에 연차까지 동료들이 쉬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어려웠다. 다행이라면 목 위로는 안 젖었다는 것이고, 근무지에는 말라 있는 유니폼이 있었으며, 손이야 씻으면 그만이었다. 더불어, 볕이 좋아 걸어가는 중에 물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조되었다. "어머, 루카..." 주방 이모부터 다른 집사와 메이드까지 루카의 몰골을 보고 한 마디 얹으려다가 되려 안타까운 몰골에 말을 삼켰다. 최근 춤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피곤해 보이는 사장 쭈니는 루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 정도면 크게 안 젖었으니까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며 격려해 주었다. 루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도 없는 직원실로 들어서고, 깊고 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을 열고 라이거는 익숙하게 집사 정장을 옷걸이에서 꺼냈다. '부우욱.' 낮고 긴 파열음이 사물함과 직원실 안을 가로질렀다.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루카는 그 소리에 제대로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거의 반으로 갈라진 연미복. 평상시에 있는지도 몰랐던, 튀어나온 작은 돌출부에 연미복이 걸렸고, 그대로 운 좋게 걸린 부분을 시작으로 찢긴 탓이었다. 여기까지가 루카가 행운과 불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과정이었다.

"루카, 준비 됐... 아..." 걱정이 되었는지 찾아온 쭈니는 루카 손에 들린 유니폼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루카가 화가 난다고 옷을 찢을 퍼리가 아니거니와, 찢긴 모양새를 보았을 때 우연으로 저리된 것으로 판단한 사장 쭈니는 힘든 탓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라이거 옆에 나란히 섰다. "일단 대타를 구하기에도 늦었고, 오늘치 급여는 1.5배로 줄 테니까, 알지?" 다시 한번 어깨를 두들겨 주며 곰은 사물함 안 메이드복을 가리켰다. 말하지 않아도 루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루카가 입는 사이즈의 큰 옷은 여벌을 준비하지 않고, 다른 직원의 집사 복은 사이즈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그나마 빨간 용 후카의 것은 빌려 입을 순 있겠다만, 지금 그 옷은 밖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손이 부족하다는 닦달에 루카는 마른 눈물을 훔치며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다.

'레드 드래곤 카르텔' 집사 메이드 카페에는 한 가지 특이한 직원 복지가 있었다. 월급에 더해 한 달 동안 손님들에게 직원 칭찬 메시지를 수집하고 그에 맞춰 월말에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한때는 모든 직원 앞에서 그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던 적도 있었지만, 선정적인 문구들로 인해 회색곰 사장과 일대일 대면으로 건네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번 달 칭찬 메시지 말인데, 오늘 일자 메시지가 많네?" 쭈니 사장은 메시지 꾸러미를 영혼이 나간 듯 지친 루카에게 건네주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주는 호감 표시인 만큼 루카는 찬찬히 메세지를 읽어보았다. '루카 등짝 계곡에 눈이 호강했어요.' '루카의 메이드 유니폼이 평상시보다 너무 야했어요. 더 해줘요.' '루카 상의가 흘러내릴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깨가 열심히 일했나 봐요.' 루카는 즉시 손을 뒤로 돌려 등을 만져보았다. 휑한 맨살과 털이 만져졌다. 메이드복 상의 등 쪽이 이유 모르게 터져 있었다. 사장 쭈니는 텅 빈 눈을 한 루카에게 내일 쉬어도 좋다는 말과 함께 인센티브 두둑이 해서 통장에 넣어줬다는 말과 함께 사장실 문을 열어주었다.